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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너지, 그 중심에 풍력발전이 있습니다.

(손영기 회장의 월요객석) 한국풍력발전, 혁신은 없는가

2020.03.20

혁신(革新)이나 개혁(改革)에서 ‘혁’은 동물의 털이나 피부 등 ‘가죽’을 의미한다. 문자 그대로 혁신이나 개혁은 ‘가죽을 새롭게 고치다’로 풀이할 수 있다. 혁신은 ‘신선한 행위나 현상’ 보다 ‘아프고 쓰린 고통이 따르지만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해야 할 행동’ 이라는 의미에 더 가까울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에너지업계에서 혁신과 개혁이란 단어는 어떠한 무게감을 가지고 있는가. 기득권과 무책임한 행정으로 각종 규제가 나날이 쌓여가는 실정을 바라보면 마음이 답답해진다.

우리나라는 편서풍지대로 꾸준한 바람이 있는 지역이나 동고 서저의 지형적 특성과 이에 따른 지리적 기후차이로 질 좋은 바람이 있는 위치가 대부분 일정고도 이상의 산지이다. 따라서 환경과 산림 토지용도 변경 등 기존 규제를 완화하여 행정에 소요되는 비용과 시간을 줄여줘야 국제평균에 어느 정도 경제성을 맞출 수 있다. 이는 사업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시장이 빠르게 확대될수록 국민이 지불하는 비용부담을 빠르게 줄일 수 있고 나아가서 이미 화석연료보다도 저렴해진 풍력발전 우량국가들과 보조를 맞출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산과 육지, 바다 등 모든 입지에서 풍력단지 조성을 제한하는 각종 규제가 갈수록 쌓여가는 가운데, 최근 예상하지 못했던 가파른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 하락으로 신규 풍력발전 프로젝트에 대한 경제성은 이미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이다.

일부 지역의 비합리적인 과도한 보상 요구에 대한 합의는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아직 우리나라의 풍력시장은 규모나 비용 측면에서 정상 궤도에 오르지 못했다. 오히려 후발주자 인 대만 베트남에도 뒤떨어져가고 있다. 과실은 제대로 영글지 않았는데 제 몫을 과하게 요구하는 사람들은 너무도 많다.

육상풍력의 경우 산지 훼손을 최소화하고, 올바르게 육상풍력을 확대하고자 이해관계 부처와 업계가 오랜 숙고를 거쳐 합의한 법적 지침이 존재하고 있음에도 현장에선 부처 간 합의나 법적 기준을 벗어난 자의적 해석이 난무한다. 해당 사업과 거리가 먼 극소수 뗏법 민원을 핑계로 일관성 없고 영혼 없는 행정이 판치고 있다.

일부 환경단체들은 대안 없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다. 이들은 해양생태계 초토화나 돌고래 서식지 파괴의 주요 원인으로 거침없이 해상풍력을 거론한다. 근거 없는 낭설이다. 해상풍력이 활발한 유럽의 경우, 실사를 동반한 대부분 연구결과가 종전보다 다양한 어종이 풍력단지에 서식하며, 해양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 결론짓고 있다.

대만 포모사 해상풍력 1단지의 경우 건설과정에서 버블커튼(공기방울을 뿜어내어 주변의 먼지나 소음을 차단하는 막)을 설치하여 돌고래에게 미칠 수 있는 소음 영향을 최소화했으며, 어민 중 일부는 남방돌고래 이동경로에서 돌고래를 보호하는 역할을 직업으로 가지게 되었고 더 많은 수입을 얻으면서 보람 있는 일을 하게 되는 등 상호 상생의 훌륭한 예도 있다.

아직 국내 연구와 사례조사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운영 중 해양생태계를 모니터링 할 수 있는 완공단지가 제주도 탐라해상풍력 하나뿐인 실정이니 대상 자체가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과연 해상풍력으로 인한 환경훼손 방지를 위해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건설적인 대안을 내놓으려 일말의 노력을 했던 적이 있는지 자문해보기 바란다.

이들 단체는 에너지 수요공급에 대한 이해 역시 부족하다고 본다. 원자력과 화력 발전뿐만 아니라 태양광과 풍력발전조차 축소하고 오로지 에너지절약만을 대안으로 내놓고 있다. 물론 에너지 절약이 국가의 전력사용량 억제에 매우 중요한 수단 중 하나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전기자동차의 공급 증가, 산업 자동화, IoT 확대 등 전반적인 전력화(電力化) 가속 추세와 이제 우리 일상에서 없어서는 안 될 전력사용의 자연적인 증가를 감안하면 ‘궁극의 에너지는 전기’ 라는 말처럼, 에너지 절약만으로 전력사용량의 절대치 자체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은 굉장히 비현실적인 주장이라 할 수 있다. 오히려 전력의 성장추세를 다양한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력을 공급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실질적인 환경보호와 기후변화 대응 수단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재생에너지 산업을 오직 일부 소수 지역민과의 갈등을 조장하며 반대하는 것이 진실로 환경보호와 기후변화 대응에 부합하는 합리적인 대안인지 또 이에 대한 국민들의 수용성은 어떨지 생각해보았는가. 설사 전력사용량 자체를 축소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했을 때, 과연 먼저 퇴출시킬 에너지원이 화석에너지가 아닌 태양광・풍력발전과 같은 순수 재생에너지인지 반문해보길 바란다.

물론 우리 모두는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합리적 사고와 근거, 기준이 통용되지 않는 현 상황은 게으름과 부끄러움의 영역이다. 과연 우리가 에너지전환이란 혁신을 논할 자격이 있는가. 혁신의 고통을 감당할 의지가 없는 사람들이 권한을 쥐고, 혁신을 두려워하는 자들이 비합리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수치스러운 과욕이라 본다. 혁신을 말로만 공허하게 외치는 자는 낡은 구태(舊態)가 되어 오히려 스스로가 정리되어야할 혁신의 대상이 될 것이다.


손영기 한국풍력산업협회장


출처 : 전기신문(http://www.electimes.com/article.php?aid=1584495425195789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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